조선은 왜 수도를 여러번 옮겼나 태종 이방원은 자금성을 건설했는가 태조 이성계는 언제 돌아가셨나 모든 것이 의문. 왜늠들이 실록의 재편찬 하면서 실수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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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10권, 태종 5년 10월 5일 정묘 1번째기사 1405년 명 영락(永樂) 3년
임금이 태상전에 나아가 한양 환도를 고하니, 술자리를 베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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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10권, 태종 5년 10월 8일 경오 1번째기사 1405년 명 영락(永樂) 3년
임금의 행차가 송도를 떠나다. 대간에서 정식으로 행차를 갖추도록 상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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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6권, 태조 3년 11월 19일 을묘 2번째기사 1394년 명 홍무(洪武) 27년
태종이 명나라 황제의 우대를 받고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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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殿下回自京師, 南在、趙胖隨至。 殿下至京, 帝引見再三, 殿下敷奏詳明, 帝優禮遣還。 初殿下之行也, 贊成事成石璘, 作詩以送殿下曰: "知子知臣睿鑑明, 畏天誠意爲生成。 皆言萬世朝鮮慶, 在此炎霖跋涉行。" 上國士人見殿下, 皆稱朝鮮世子, 甚敬之。 殿下過燕府, 燕王 【卽太宗皇帝。】 親見之, 旁無衛士, 唯一人侍立。 溫言禮接甚厚, 因使侍立者饋酒食, 極豐潔。 殿下離燕在道上, 燕王乘安轝朝京師, 驅馬疾行, 殿下下馬見於路側, 燕王停駕, 亟手開轝帷, 溫言良久乃過行。 後殿下見欽差內官黃儼, 問: "昔見帝于燕府之日, 侍立者爲誰?" 儼曰: "慶大人, 溫良人也。 帝最親信者, 今已亡矣。"
이 원문의 번역 내용.
전하(이방원)께서 경사(京師)에 이르시니, 남재와 조반이 함께 수행하였다. 황제(이성계)가 여러 차례 인견하시고, 전하께서는 조목조목 상세히 아뢰었다. 황제(이성계)는 예우를 다하여 전하를 돌려보냈다.
처음 전하께서 떠나실 때, 찬성사 성석린이 시를 지어 전송하였다.
자식을 알고 신하를 아는 임금의 예감은 밝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진심은 백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모두가 말하기를, 조선의 영원한 경사는 이 더위와 장마 속에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이 길에 있다 하더라.
상국의 선비들이 전하를 보고 모두 “조선의 세자”라 부르며 매우 존경하였다.
전하께서 연부(燕府, 당시의 연왕은 훗날 태종 황제)【즉 이방원 본인】를 지나실 때, 친히 맞이하였다. 곁에는 시위하는 병사가 없고, 단지 한 사람만이 곁에서 모시고 서 있었다. 온화한 말과 예절로 매우 후하게 대접하였고, 곁에 있던 사람에게 술과 음식을 내오게 하였는데, 매우 풍성하고 깨끗하였다.
연왕이 편안한 가마를 타고 경사로 향하며 말을 몰아 매우 빠르게 달려갔다. 곁에 있던 사람이 말에서 내려 길가에서 절하니, 연왕은 수레를 멈추고 급히 손으로 가마의 휘장을 걷고, 온화한 말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떠났다.
훗날 연왕이 황제가 된 후, 내관 황엄에게 물었다. “예전에 내가 연부에서 있었을 때, 곁에 모시고 서 있던 사람은 누구였는가?” 황엄이 대답하였다. “경 대인입니다. 온화하고 어진 사람으로, 황제께서 가장 신임하던 인물이었으나 지금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