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은 1956년 이른 봄, 해방 이후 전위적 모더니즘 시운동을 주도해온 박인환(1926~56)이 심장마비로 요절하기 1주일 전에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이 시와 노래는 전후 폐허가 된 명동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다시 모이고 음악다방과 술집이 하나 둘 생기던 시절, 시인의 단골 선술집인 경상도집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일화가 전한다. (배우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했던 은성주점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으나 당시 참석자 중 한 명인 소설가 송지영의 증언을 따랐다.)
가난한 작가와 화가, 연극인들이 뒤섞여 술을 마시던 봄날 밤, 수려한 외모와 낭만적 시풍으로 ‘명동백작’ ‘댄디보이’로 불렸던 박인환이 흥에 취해 시를 써 내려갔고 극작가 이진섭이 단숨에 곡을 붙였으며 ‘백치 아다다’를 부른 가수 나애심이 즉석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가 그것이다.
송지영과 나애심이 떠난 뒤 테너 임만섭과 소설가 이봉구가 새로 합석, 임만섭이 이 악보를 보고 정식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주점으로 모여들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명동의 샹송’ ‘명동 엘레지’로 불렸던 명곡은 그렇게 탄생했다. 2005년 EBS의 ‘명동백작’이라는 24부작 드라마에 이 장면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극 중 나애심으로 분한 배우가 담백하게 부른 '세월이 가면'도 오래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