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삶] "교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 인바이블 말씀사역 / 크리스천 신앙 성장을 위한 채널

Опубликовано: 18 Май 2026
на канале: Word Ministry in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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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링크 :    • [Vol.3] 묵상기도를 위한 CCM 피아노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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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 분이 이런 문의를 주셨습니다.
목사님, 교회 안에 중직자들이고 열심이신 분들인데 언행에 있어 세상적 열매를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권력이 있어 교회 내에서 교회를 세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여러분, 여러분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시간에는 교회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있을 때,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만약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며 문제를 일으키는 분들이 있다면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가 이것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전에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교회 공동체는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열 두 제자 공동체를 통해서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비록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뽑아 공동체를 세웠지만, 이 공동체 안에도 신앙적으로, 성격적으로, 삶의 가치관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베드로를 보면 어떻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라고 신앙을 고백을 했지만 얼마 못가 이 입으로 또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지 않습니까?(마 26:69-75)
또 요한과 야보고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 마을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할 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반대를 하자 요한과 야고보가 어떻게 합니까?
자신들을 반대한다고 예수님께 저들에게 불을 내려 없애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눅 9:54) 이것을 통해 우리는 요한과 야고보의 성격이 불같이 다혈질적이며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럼 빌립 같은 경우는 어떻습니까? 성경 여기저기에서 빌립이 현실적이며 계산적인 사람인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요 6:6-7)
그러면 도마는 어떻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말을 했을 때, 이것을 못 믿지 않았습니까?
유다 대다오는 어떻습니까? “예수님 왜 당신은 우리에게 보여 주시면서 세상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므로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지 않습니까?
가룟 유다와 같은 경우는 예수님을 은 삽십에 팔아 먹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이 뽑아 세운 열 두 제자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만약 내가 교회 공동체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모습이 나타날 때, 문제가 있다고 느껴질 때 이때 우리가 어떤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하느냐?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를 기억하면서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교회 공동체는 없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만약 내가 속한 교회에 문제와 좋지 못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럴 때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길 바라실까요?
우리는 이에 대한 해답을 또한 열 두 제자 공동체를 통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자 공동체는 앞에서 언급한 것 이외에도 참 문제가 많은 공동체였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자신들을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했고, 이로 인해 이들은 제자들로부터 공분을 샀습니다. 즉 이들은 제자 공동체를 통해 자신들의 사적인 욕심을 채우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 제자 공동체는 마태와 시몬의 관계로 인해 긴장감이 맴돌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시몬은 열심당원 소속입니다. 즉 로마의 지배로부터 이스라엘의 독립의 위해 싸우는 독립투사당 출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세리가 마태가 제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열심당원에 대한 기록을 보면,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 매국노이므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나와 있습니다. 즉, 시몬에게는 세리 마태가 이스라엘 독립을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이러니 시몬과 마태 사이에 얼마나 긴장감이 있었겠습니까?
이렇듯 제자 공동체에 있는 여러 문제들과 좋지 않은 영향들로 인해 이 공동체는 잘 되기보다 오히려 깨지고 분열되기 쉬운 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이랬던 제자 공동체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어떻게 됩니까? 분열되고 깨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되지 않습니까?
그럼 여러분, 제자 공동체는 깨지고 쉽고 분열되기 쉬운 여러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해서 깨지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자기 중심, 인간 본성 중심” 공동체가 서서히 예수님의 마음과 태도를 가진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바뀌어져 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 신앙 고백을 했지만, 또한 세 번이나 부인을 했습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이렇게 배신자가 나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그 사람을 향해 “이 배신자야!”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자야!”와 같은 말을 하며 그 사람을 공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제자들도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보며 이런 마음이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향해 어떻게 하십니까?
예수님이 숯불 아래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을 부인했는데(요 18:25-27) 예수님은 숯불을 피어 놓은 갈릴릴 호수가에서(요 21:9)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고, 베드로가 그렇다고 하자, 오히려 이 고백을 신뢰해 주시며 다시 수제자로 세우시며 양을 맡기시지 않습니까?(요 21;15-17)
또 요한과 야고보가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불을 내려 멸해 달라고 했을 때, 이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반대파를 향해 처단하는 대신 요한과 야고보를 책망하시며 오히려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품어 주시지 않습니까?
또 가룟 유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가룟 유다가 팔 것을 아신다는 것을 계속 보여 주심으로 끝까지 돌이킬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까?(요 13:21, 26)
여러분, 왜 탈도 많고 문제가 많았던 제자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굳건히 설 수 있었느냐?
자 중심, 인간 본성의 중심 공동체에서 용서하며 품어 주며, 다시 기회를 주시며, 안아 주시는 예수님을 통해 보고 배우며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바뀌어 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에는 문제나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이런 사람들을 향해 정죄하며 비난하며 손가락질을 하는 공동체가 된다면, 이런 공동체는 절대 건강하게 세워질 수 없으며 자칫 분열되며 깨어지기 쉬운 공동체가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문제가 있더라도 예수님의 마음과 태도로 용서하며 품어주며 서로 세워 주고자 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있는 공동체라면 이런 공동체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님은 이렇게 공동체를 세워 가셨는데, 그럼 공동체 안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이럴 때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할까요?
우리는 이에 대한 해결 방법을 간음한 여인의 예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갑니다(요 8:3-11). 그리고 율법을 내세우며 “이 여자가 돌에 맞아 죽을 간음 죄를 지었는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때 예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러자 성경은 나이 많은 사람부터 젊은 사람들 모두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중요한 문제 해결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누군가 잘못을 했을 때, 법이나 원칙을 들이대며 “니가 이렇게 잘못했으니까 벌을 받아야 돼!”라는 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러분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을 하셨을 때,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나중에는 여인과 예수님과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때야 비로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를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여자는 돌로 맞아 죽을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에 대해 비난하시거나 정죄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럼 언제 예수님이 이에 대해 말씀을 하셨느냐? 여인이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신뢰를 가질 수 있었을 때에야 비로소 예수님이 여인에게 고쳐야 할 문제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한 분이 질문을 주셨습니다. 중직자 중에 세상적인 열매를 보이며 세속적인 모습을 보이는 모습이 있는 분이 있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에 이런 분들이 있을 때 우리는 이럴 때 어떤 태도와 자세를 취해야 할까?
먼저는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교회 공동체는 없다” “완벽한 존재는 없다”라는 인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 공동체도 이러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이때 이러한 것을 보았다면 바리새인처럼 먼저 정죄하거나 비난하는 자리에 서기보다 용서하며 품어 주시며 안아 주시는 예수님의 자리에 서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의 신뢰감이 생기게 되었을 때, 이때 이 분들에게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면, 이 분들과 신뢰감이 있는 목회자에게 상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는 두 세 사람을 통해 같은 말을 듣게 된다면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워 가기 위해 성경의 방법처럼 이 분들에게 권면하며 치리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마18: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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